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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서 - 리코의 주인. The Chasers - The Masters of the Reco.

한예섬|
"...여기서 모든 체이서의 영원이 시작되는 거야. 그리고 그 영원성 때문에 모든 체이서들은 결국 미아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미아라고요?”

“그래. 시간의 미아.”

마르티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실버의 말에 집중했다.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탈출구라고 할 수 있지. 삶이라는 것에 있어 태어남이 그 입구였다면 죽음은 출구인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그 입구와 출구를 잇는 삶이라는 통로는 시간이라는 바닥과 그 위에 놓인 사건이라는 장애물들로 이루어져 있지. 삶이란 그런 것이지 않던가. 그런데 체이서들에겐 죽음이라는 그 출구가 사라져 버렸어. 오로지 들어오는 입구만 존재하게 된 것이지. 그렇다면 그 출구가 없는 삶이 시작되는 이곳은 결국 체이서들에겐 미궁과 같은 곳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곳을 미궁이라고 부른다 한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어쩐지 실버의 말에 압도당하고 있던 미르티나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당신은 신의 사자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겠지만, 그대가 실망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해야겠군. 일단 나는 신의 사자 같은 것이 아니야. 솔직히 나는 신을 본 적이 없어. 그가 혹은 그녀가 내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을 한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무슨 신탁 같은 것을 받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며 살아갈 뿐이지.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어. 나도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이런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지. 그래서 그 힘으로 수 많은 세계를 주유하던 어느 날, 나는 트러블이라는 것과 조우하게 되었지. 나는 처음에 그것이 신의 장난 같은 것인 줄로만 알고 그 끔찍한 참상에 분노하고 또 한편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벌벌 떨었지. 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곧 알게 되었어. 그것이 신의 괴팍한 취미 같은 현상이 아니라 그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순환으로써 존재하는 힘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그 끔찍한 파괴가 사실은 세계의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야. 파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순환 시스템이었어. 그 후로 깨달았지. 신에 대한 것들을... 내가 아는 한, 신은 세상의 일에 절대로 관여하지 않아. 관여를 한다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닐테지. 무지한 자들은 신이 자신들의 간절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 희망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말하더군. 그렇게 믿는 것은 자유야. 때로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이듯이. 그렇게 믿는 것도 무지한 채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기에 나는 딱히 혐오하지는 않아.”

그렇게 말하고 있는 실버의 표정은 혐오를 가득 담고 있었기에 마르티나는 속으로 웃었다.


-체이서 실버와 헌터 마르티나의 대화 중 일부-
작품 회차(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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