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젠트리 계집애.” 명성에 걸맞은 입담을 가진 검은 머리카락의 이방인, 공작가의 사생아 루퍼트 블랙우드가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왔다. “함께 춤추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브라운 양?” 알아주는 독설가에서 점잖은 신사로, 180도 돌변한 그의 태세 전환에 엘로이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욱 놀라운 건, 서대륙의 영원한 승리자인 그가 벨더스 왕국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영지도, 성도, 재물도 그에겐 필요치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엘로이즈 브라운.” “전장에서 머리를 다치기라도 하셨나 보죠?” “보고 싶었어.” 그녀라는 존재였다. [dareuze@naver.com]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내 목표는 하나였다. 누구와도 엮이지 않고 공기처럼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무사히 졸업하는 것. 내 과거도, 비밀도, 그리고 평민이라는 것까지, 이유는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1년 동안 그 계획에 차질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사건으로 절대 엮여서는 안 되는 부류의 세 사람과 지독하게 엮이고 말았다. 신분, 재능, 성적, 그 모든 면에서 어딜 가나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몰고 다니는 학생회. “학생회에 들어와라. 단,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 날 학생회로 끌어들이려는 장본인, 학생회장 휴디엔. “네 이름, 라벨라 맞지? 우리 앞으로 볼일이 많을 것 같은데.” 날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묘한 관심을 보이는, 에드리안. “내가 봤을 때 넌 이미 도망치기 글렀어.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내 앞에서 신경 거슬리는 말만 늘어놓는, 첼른. 맞다. 이건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불의고 뭐고 그냥 모른 척했어야 했다. 나랑 상관도 없는 일에 나서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제발 날 좀 믿어달라는 목소리가, 누가 날 좀 구해달라는 눈빛이 꼭 예전의 나와 닮아 있어서. 그리고 이 만남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했다. ***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세 사람을 만난 것도, 달라지고 싶다고 결심한 것도, 그리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악연과 조우하게 된 것도. 과거, 가족이면서 자매였지만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상처를 준 리이렌 히네우스. 라벨라는 이번엔 그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네가 항상 나한테 말했잖아. 이기고 싶으면 아등바등해보라고. 이거 어쩌지. 이젠 네가 날 이겨야 할 차례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어디 한번 아등바등해봐.” *** 작가 메일: qlqldk33@naver.com
“키스······ 할 거야. 싫으면 지금 말······.” 1황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 발꿈치를 들어 1황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꾹 눌러왔다. 예상치 못한 급습에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불시의 공격에 리드를 빼앗긴 그는 우습기도 하고, 어디 어쩌나 싶어 가만히 있었더니 잠시 그렇게 있던 리브의 혀가 불쑥 들어왔다. 그 간질거리는 흥분과는 별개로 리브의 하는 짓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한참을 웃다 살며시 볼을 감싸고 참아지지 않는 웃음을 얼굴 가득 담은 1황자가 물었다. “어디서 배웠어?” 예언과 운명이 얽힌 제국 비스페리아. 법적으로는 왕정이나 실질적으로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제국에서, 황제의 총애로 전지전능해진 차비와 절대왕정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자들의 음모와 계략 한 가운데 ‘공작가의 축복’ 리브 로링겐트, 그녀가 있었다. 울고만 있을 수 없어 웃을 수밖에 없는 날들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키워 온 1황자이자 약혼자인 아더를 지키기 위해 결단해야 했다. 알렉산더 트룰로비스 헤르만. 그는 자신의 삶을, 세상을 관조했다. 제국 1황자이면서 1황자가 아니기를 바랐다. 자신이 쥐고 태어난 모든 것들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그는 자유를 원했다. 황자의 의무를 버리고 바람처럼 자유로이 세상을 떠돌기를 원했다. 그는 혼자이기를 원했다. 사랑에 대한 욕구, 행복의 추구, 제국에서의 위치 확보와 존재 가치의 증명 같은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차비의 손에 사랑하는 이를 두 번 다시 잃고 싶지 않아 회피하고 단념해 버렸다. 그런 그가 그 어떤 것보다 원치 않았던 것이 사랑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랑을 했다. 그가 간과했던 것은 사랑과 질투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점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리브를 되찾기 위해 제국의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사랑과 희생이 단념과 회피로 점철되었던 그의 삶을, 의식을 깨웠다. 예언과 운명에 맞서 제국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두 연인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짧은 사랑과 긴 이별의 이야기.
"신부님은 제가 마녀여도 상관없어요?" "마녀가 아니잖습니까." "그게 그거죠, 뭐. 마기를 뿜는다는데요." 역병 격리소에서 불타죽은 후, 신의 자비로 회귀한 줄 알았던 비비아나. 그러나 그 몸뚱어리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게 되었다면, 회귀는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데메트리오는 가슴 속이 간질거리는 감정을 불쾌함으로 여겼다. 감정에 무뎠던 하급 사제는 그 감정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그녀를 밀어냈다. “저도 수도에 함께 가도 되나요?” “……. 주제 넘습니다. 비비아나 수련 수녀.” 그러지 말아야 했다. 수도로 올라온 뒤 반년, 그는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고서야 사랑을 알았다. 너무 늦은 사랑을. * * * 사제는 100명을 저울대에 올려 비비아나를 살렸다. 그런데, “저 여자의 몸에서 마기가 풀풀 풍겨 나오고 있는데 지금 그걸 막아서?” “무, 무슨 소리세요. 제 옷 안 보이세요? 저는 수련 수녀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살렸는데 그 사람이 모두에게 지탄받는 존재로 타락한다면, 과연 그 죄악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의 존재는 부정이고, 그의 사랑은 죄악이다. 배도자 데메트리오는 한없이 애끓는 감정을 숨기고 비비아나에게 말했다. "수도로 갑시다. 제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회귀물#성장물#가상시대물#후회남주#해바라기남주#상처남주#무뚝뚝남주#햇살여주#씩씩여주#발랄여주#무신론자사제#마력수련수녀#스케일이큰 미계약작 : whitewhale_10@naver.com
“너는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거잖아.” 립스틱 범벅이 된 입술로 길게 내뱉는 모습을 보니,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와는 그 흔한 손 잡기도 하지 않았으면서. “파혼해요, 우리.” 10년을 사랑했지만, 더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텅 비어 버려 남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 “나랑 파혼하고 싶으면, 법대로 해.” 그래서 베일에 싸인 공작을 선택했다. 썩은 동아줄인지, 황금 동아줄인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