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좀비물에 빙의했다. 그것도 막 좀비들에게서 도망치는 순간으로. “뜀박질 하나 제대로 못 해?” 아니, 내가 짜증 좀 내고 트롤 짓을 한 악녀는 맞는데 그래도 버리고 가지 마! 내 간절한 애원에도 주인공들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결국… 콰득! 빙의한 지 5분 만에 좀비에게 물려버렸다. * * * “어떻게 무사할 수 있는 거지, 페넬로페?” 무사히 돌아온 내 모습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녀님! 살아계셨군요!” 안심된다는 듯 와락 날 끌어안는 여자의 달콤한 체향에 입이 자꾸만 벌어졌다. 지금이라면 콱 물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경계하듯 칼을 겨눈 대공에 정신을 꽉 붙든 채 본능을 억눌렀다. 2년만 버티면 약이 개발될 텐데,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그렇게 기회만 엿보며 주인공들을 도와 열심히 탐사를 시작했는데… 주인공들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기 시작했다. “페페, 너 몸이 너무 차. 무리하는 거 아냐?” “왜 항상 그대가 위험한 탐사를 도맡는 거야. 그대는 좀비에게 물리지 않기라도 한다는 건가? 제발 몸 좀 아껴!” 나 좀비에 안 물리는 거 맞는데? 민폐 악녀캐였던 나는 어느새 숭고한 인류애를 실천하는 백의천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