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바라옵고 바라옵건대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했다.
신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소중한 사람을 보내주었고 또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갔다.
“신이시여. 제 할 일이 다 끝나게 된다면 그때는 저의 죽음에 관여하지 말아 주세요.”
간절한 기도 끝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소년을 만났고 살렸다. 그리고 둘은 저주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졌다.
* * *
어슴푸레한 새벽을 닮은 눈동자가 샤네즈를 응시했다.
한때 저 눈빛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믿었고 믿고 싶었으나, 조금씩 이지러진 마음엔 이젠 미움밖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억울했다.
이유도 모른 채 외면당한 것이 서로에게 속삭였던 수많은 약속이 결국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려졌다는 게.
“샤네즈.”
“처음 뵙네요. 로세르핀 대공.”
“오랜만이야. 샤샤.”
왜 항상 자기 맘대로일까, 떠날 때는 매정하더니 갑자기 친한 척이라니. 정말 웃겨.
겨우 눌러왔던 화가 터졌다.
“그렇게 부르지 마!”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결심한 듯 열었다.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할 거 없어. 우린 그냥 늘 그렇듯 모른 척 살면 돼. 어차피 너는 날 진심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잖아.”
“나는 널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또 거짓말.
“갈게.”
샤네즈는 등을 돌렸다. 진득한 시선이 달라붙었지만, 그녀는 앞만 보며 걸었다.
옅게 남아있는 샤네즈의 향기가 바람결에 흩어져 갔다.
그의 손끝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내 선택이 너를 아프게 할 줄 알면서도 외면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용서해 줄까.